서원/사찰

용강서원

◆ 용강서원(龍岡書院) ◆
지정번호 : 경상북도기념물 제129호
지정일자 : 1988년 8월 3일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이서면 모산길 45-4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밀양박씨용강문중

청도에 정착해온 밀양박씨(密陽朴氏) 문중의 그 현조(玄祖)인 충숙공 박익(忠肅公 朴翊)과 임란14의사(壬亂14義士)를 재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용강서원(龍岡書院)이다.
서원 내에 있는 충열사(忠烈祠)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때 의병을 일으켜 청도·밀양·경산 등지에서 왜적에게 큰 타격을 준 박경신(朴慶新), 경인(慶因), 경전(慶傳), 경윤(慶胤), 경선(慶宣), 선(瑄), 찬(璨), 지남(智男), 철남(哲南), 린(璘), 우(瑀), 구(球), 숙(琡), 근(瑾) 14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14의사는 부자, 형제, 숙질, 종형제 사이로 이 가운데 12분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2·3 등에 각각 책봉되었고, 한 분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1등에 녹훈 되었다. 이에서 주목되는 점은 1개 사족(士族)가문의 부자, 형제, 숙질, 종반사이의 14명이 함께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궐기하였다는 점은 역사상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할수 있다. 이들을 제향하는 용강재(龍岡齋)는 1794년(정조18)이래 후손들을 위시한 지역 사림들이 사우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관철되지 못하다가 1816년(순조16)충열사(忠烈祠)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1868년(고종5) 훼철 되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용강서당(龍岡書堂)이 건립되었고 1935년 요사, 관리사, 창고, 14의사를 봉안한 숭의사(崇義祠)가 충열사(忠烈祠)로 용강서당(龍岡書堂)이 용강서원(龍岡書院)으로 개명(改名)되었다. 1960년 강당(講堂)이 건립되었다.
14의사 묘정비(廟庭碑)는 1876년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시질(金是瓆)이 찬하고 서자(書者)는 천주교도(天主敎徒) 이가환(李家煥1742-1801)이다. 임란 당시의 상황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비각의 구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 밀양박씨 일족의 위국충절(爲國忠節)과 그 전통을 400년이 넘도록 면면히 이어온 후손들의 의지는 후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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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서원

◆ 금호서원(琴湖書院)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308호
지정일자 : 1995년 6월 19일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이서면 삼성산길 106-58외 3필
시 대 : 순조14년1814년, 1947년중창
소 유 자 : 재령이씨 지암종중

이 건물은 임란 때 원균(元均) 휘하에서 옥포만호(玉浦萬戶)의 신분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워 경상우수사 겸 3도 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息城君) 이운룡(李雲龍1562∼1610, 보물제1212호참조)장군과 향산 이백신(鄕山 李白新)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장군의 출생지인 매전면 명대마을(온막리)에 상충사(尙忠祠)를 건립하여 향사 하다가 조선 순조14년(1814)에 이서면 금촌리로 이건 한 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년(고종8)에 훼철(毁撤)되고 강당만 대월산 기슭으로 이건 하여 효충사(孝忠祠)라 하였고 1947년에는 서원을 중창하고 강당은 2001년 다시 중건하였다.
서원은 대월산(對月山)을 배경으로 앞쪽의 풍양지와 학산(鶴山)바라보며 북서향으로 좌정하고 전체배치는 2단으로 조성된 대지에 외삼문 강당 사당을 일축선상(一軸線上)에 두고 강당의 좌우에 동 . 서재를 둔 전학후묘형식(前學後廟形式)이며 사당은 강당의 뒤편 높직한 곳에 토담으로 돌러 현충사(賢忠祠)라 하고 기둥 위를 연화와 봉두로 장식하고 있다.
외삼문은 정면3칸 측면1칸의 ㅡ자형 건물로 대문간 좌우에 고방1칸씩을 두었다. 강당은 3량가의 초익공(初翼工)집으로 정면 퇴칸의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으로 되어 2통칸 우물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양측 온돌방의 전면에는 퇴칸을 두었으며 마루와 방 사이에는 사분합들문을 설치하였다. 동 . 서재는 정면3칸 측면1칸의 ㅡ자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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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원

◆ 자 계 서 원(紫溪書院) ◆
지정번호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83호
지정일자 : 1975년 12월 30일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서원길 62-2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김헌수(김해김씨문중)

조선 초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선생을 배향 하기 위해 중종13년(1518년)창건하고 운계서원(雲溪書院)이라 하였고 선조11년 중건하여 현종2년(1661년) 자계서원으로 사액(賜額)되었다. 고종8년(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동 . 서재만 남아 있다가 1924년 참봉 김용희(金容禧)가 중건하였다.
탁영 김일손 선생은 성종17년(148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及第)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연산군4년(燕山君 1498년)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쓴『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참화(慘禍)당하였다. 이 사건을 무오사화(戊午史禍)라 한다. 중종 반정 후(燕山君12년 1506년) 도승지와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에 추증(追贈) 되었다.
건물 배치 중심에 있는 보인당(輔仁堂)은 정면5칸, 측면2칸의 고상형(高床形) 집이며 겹처마 팔작 지붕에 활주가 있다. 가구는 5량가이며 연등천장에 우물마루를 깔고 공포는 익공계 이다. 영귀루(1699년重建)는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자연석의 초석상에 원주를 세워 루주(樓柱)로 삼고 마루를 놓아 다시 루를 가구 하였다. 가구는 5량가로 공포는 주심포계에 익공이 절충한 모양이다. 동재의 건축기법은 그 유례가 흔하지 않으며 청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인당(輔仁堂) 주축 선에는 영귀루(詠歸樓) 와 유직문(惟直門)이라는 三門이 있고 보인당 동쪽에는 존덕사(尊德祠)와 전사청, 신도문이 따로나있다.
이 서원의 12동 건물중 영귀루와 동서양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영귀루 옆에는 탁영 김일손 선생께서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동쪽으로 탁영선생의 신도비와 절효(節孝) 김선생 정려비(旌閭碑)라 쓴 조부의 비가 있으며, 서쪽에 서원정비(書院庭碑)등이 있는 자계서원은 조선초기 역사와 건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학자와 유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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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사

주소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라길 16-107

◆ 대한불교조계종 덕사(大韓佛敎曹溪宗 德寺)◆
전통사찰 : 가-81호
지정일자 : 1988년 7월 21일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라길 16-107
창립년대 : 1576년

이 곳은 이서국(伊西國)때부터 천혜의 요새를 이룬 이서산성으로 신라에 복속 되기 전까지 신라(新羅)와 격전을 치르다 297년(신라 유례왕14) 이서국이 최종 패한 패성지(敗城地)이다. 이 덕사(德寺)는 청도의 정기(精氣)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1576년(선조9년)에 세운 사찰이다. 또한 개가 달아나는 현상이라 하여 주구산(走狗山) 주구산성으로 부르기도 하며, 개를 머물 개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여 범이 살수 있게 한 솔산, 솔이산성(率伊山城) 이라고도 한다.
이산성에 군수 황응규(黃應奎)가 달아나는 개를 머물게 해야한다는 지리학설에 따라 사원을 세우고 떡을 주어 개를 머물도록 하기 위해 절 이름을 떡절이라 하였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덕사(德寺)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의 가람들은 1816년(순조16년)에 장옥대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이 동 . 남으로 영토를 확장할 때 이 산성에서 저항하는 이들을 소탕할 방도를 봉성사(奉聖寺) 보양스님께 물으니 『犬之爲物 司夜不司晝 守前忘其後 宜晝擊其北(개는 밤에 지키되 낮에는 지키지 않고 또한 앞만 지킬 뿐 뒤는 지키지 않는다)』왕건은 이를 실행하여 저항하는 이들을 소탕 할 수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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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사

주소 : 경북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248-170

◆ 대한불교조계종 대산사(大韓佛敎曹溪宗臺山寺) ◆
전통사찰 : 가-79호
지정일자 : 1988년 7월 21일
소 재 지 : 경북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248-170
창립년대 : 830년

화악산(華岳山)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월은산정에 자리잡은 이 사원은 신라 흥덕왕5년(830년)에 창건하고 목지국(目支國)에서 남해상에 표류해온 천수관음(千手觀音)불상 3구중 한 구는 운문사에 봉안하고 또 한 구는 간 곳을 알 수 없고, 나머지 한 구를 이곳에 봉안하여 용봉사(龍鳳寺)라 하였다. 임란 때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고 천수관음불상은 왜적들이 도적질이 두려워 땅속에 묻었는데, 그 사실을 안 자가 고철로 팔려는 생각에 불상을 파내던 도중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해지며, 임란 후 불상을 파내어 법당에 다시 봉안하고 고종13년(1876년) 왕후의 꿈에 부처님이 현몽(現夢)하여 많은 시주를 하고 절을 중건하였던 사원을 다시 의문화상(義文和尙)이 중수하여 대산사(臺山寺)라 개칭하였다.
1930년(일제강점기) 또다시 야습한 도적 때들의 방화로 법당은 사라지고 불상은 반소 된 것을 봉안해오다 주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월은산(月隱山)은 제비가 알을 품고있는 형상으로 많은 새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풍각면 덕양리에서 대산사(臺山寺)로 오르는 산길이 뱀의 모양과 같아 뱀이 제비 알을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대석을 멧돼지형상으로 만든 돼지 탑이 조성하였고 2000년 여름 사찰경내 밭에서 발견된 천수관음(千手觀音)불상수인에서 용봉사의 내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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